사망자의 계정 접근 권한, 법적으로 보호되는가?
1. 사망자 계정은 법적 보호 대상인가?
현행 법체계에서 사망자의 온라인 계정은 생전의 개인정보가 담긴 공간이자, 다양한 디지털 자산이 포함된 ‘디지털 유산’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생존자’를 전제로 적용되기 때문에, 사망자의 계정은 법적으로 별도의 보호 체계가 없다. 그 결과, 유족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예를 들어, 고인의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SNS 계정, 금융 관련 온라인 계정 등은 그 자체가 개인의 정체성과 정보를 담고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는 이용자 생전에 계정을 보호하기 위한 약관에 따라 ‘타인의 접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사망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법적 명령 없이는 계정 정보나 콘텐츠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족 입장에서 큰 불편을 초래한다. 고인의 계정 안에 중요한 가족사진, 사업 자료, 암호화폐 지갑 정보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가 미흡하거나, 플랫폼 약관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접근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 결국, 사망자 계정의 법적 보호 여부는 개별 국가의 법률보다 기업의 정책과 약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2. 국내외 판례에서 본 사망자 계정 접근 분쟁
국내외에서 사망자의 계정 접근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이미 수차례 발생해 왔다. 특히 유족이 고인의 디지털 자료를 복구하거나 계정 삭제를 요청했지만, 해당 플랫폼이 이를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2021년, 한 유족이 구글 계정에 저장된 가족사진과 영상 등을 복구해 달라며 구글코리아에 요청했으나, 구글 측은 “법적 권한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이에 유족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주며 ‘정당한 가족 관계 및 사망 증명 제출 시 협조할 의무가 있다’ 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사망자 계정에 대한 접근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한 첫 주요 사례로 꼽힌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한 어머니가 사망한 아들의 애플 아이클라우드 계정에 저장된 사진에 접근하려고 했으나, 애플이 이를 거부했고, 결국 수년간의 소송 끝에 법원 명령을 통해 계정 접근이 허용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디지털 시대에 개인 계정의 법적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판결은 모두 개별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일 뿐, 법적 기준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사망자 계정의 접근 권한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매번 소송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실정이며, 이는 정보 접근권과 유족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3. 사망자 계정 접근, 플랫폼 약관이 우선인가?
현실적으로 사망자의 계정 접근 여부는 법보다는 플랫폼의 ‘이용약관’ 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서비스 제공자들은 대부분 계정의 소유권이 사용자에게 있지 않고, 서비스 사용권만 제공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즉, 사망 이후 계정은 자동으로 비활성화되거나, 삭제될 수 있다는 조항이 약관에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통해 생전에 사후 처리 방안을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이를 설정하지 않았다면 유족이 계정 접근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애플도 디지털 유산 연락처(legacy contact) 기능을 통해 일부 계정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사전에 설정해 두지 않으면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약관이 국내 상속법이나 민법보다 우선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민법상 자산 상속이 가능하다고 해도, 약관 상 명시된 제한에 의해 계정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더군다나 약관은 대부분 글로벌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한국 법률과 충돌이 발생해도 그 해석은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유족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남겨두는 사전 설정이나, 공증을 통한 유언장 등의 법적 문서를 준비해두는 것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4. 사망자 계정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
현재처럼 기업의 약관에만 의존한 계정 보호 체계는 유족의 권리와 국민의 정보 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디지털 자산이 개인의 경제·사회적 자산으로 확대된 이상, 사망자의 계정과 정보에 대한 합리적인 법제화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민법상 상속 자산의 범위에 ‘디지털 자산’ 및 ‘온라인 계정’을 명확히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은 법률상 계정이나 디지털 콘텐츠의 상속 가능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기업 약관이 모든 권한을 갖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법률로 보완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 강화와 표준화된 양식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는 개인이 임의로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사용하는 수준에 그친다. 향후에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유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등록된 유언장이 법적으로 강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일정 수준의 사망자 계정 관리 의무와 유족 대응 의무를 법으로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당한 사망 증명과 상속 관계 서류를 제출하면, 기업이 계정 접근을 허용하거나 데이터 백업을 제공하도록 하는 **‘디지털 상속 권리보장법’**과 같은 입법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망자의 계정 보호와 유족의 권리가 개인의 사전 설정 또는 기업의 내부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제 사적인 문제가 아닌, 국민 기본권의 연장선에 있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속 모델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