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열람할 수 없는 자료들, 삭제인가? 상속인가?
1. 열람 불가능한 디지털 자료의 실체
사망자가 남긴 디지털 자료 중 일부는 가족이 열람하고 싶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보통 비밀번호나 이중 인증, 암호화 기술로 보호되며, 법적 권한 없이 접근을 시도하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암호화된 이메일, 개인 스마트폰 내 메신저 기록, 웹하드 서비스에 저장된 개인 파일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고인이 명확한 공개 의사를 남기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유족이 접근할 권리가 제한됩니다.
심지어 국내 법령상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아, 서비스 사업자의 정책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사망자의 계정에 대해 ‘사후 계정 관리자’ 설정이 없으면 접근을 제한하고, 애플은 유족이 ‘디지털 유산 접속자’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단말기 잠금조차 해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망자의 디지털 자료는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권한 있는 행위자만 접근 가능한 민감한 정보로 취급되어, 상속 이전에 ‘접근권’ 자체가 핵심 문제가 됩니다.
2. 삭제냐, 보존이냐: 사망자 자료의 처리 기준
사망자의 비공개 자료가 가족에게 열람되지 않는다면, 그 자료는 삭제되어야 할까요, 보존되어야 할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데이터 보관 문제를 넘어,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유가족의 알 권리, 상속권이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해당 정보의 삭제를 원했다는 명확한 의사가 있다면, 이는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삭제가 원칙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고인이 별다른 언급 없이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감정적 혹은 경제적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사업 관련 이메일, 저작권이 있는 창작물 등은 유족에게 실질적인 가치가 있는 유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정보가 너무 사적인 내용이거나 제3자의 권리와 충돌할 경우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가정법원을 통한 자료 열람 허가 절차를 밟거나, 서비스 제공자의 내부 심사 절차를 통해 부분 공개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삭제와 보존의 경계는 사망자의 의사와 유족의 권리 사이의 조율 문제이며, 이를 명확히 해두기 위한 ‘디지털 유언’의 필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습니다.
3. 상속 가능한가? 비상속 대상 자료의 경계
모든 디지털 자료가 상속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상속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하며, 단순한 개인 기록이나 비공개 문서는 이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SNS 메시지, 사적인 일기, 검색 기록, 개인 영상 메모 등은 통상 사생활의 일부로 간주되어 상속 대상이 아니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반면, 유료 콘텐츠, 유료 앱 내 구매 내역, 저작권 있는 디지털 작품, 암호화폐 지갑 등은 명백한 재산권 대상이므로 법적으로 상속이 가능합니다.
다만 접근 불가능한 채로 방치되거나, 소유 증빙이 어려운 경우 상속은커녕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따라 비상속 디지털 자료의 유형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① 고인의 명시적 삭제 의사 유무,
② 개인정보 포함 여부,
③ 경제적 가치 존재 여부,
④ 타인의 권리와 충돌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아
비상속 자산과 상속 대상 디지털 자산을 구별하는 가이드라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습니다.
4. 사전 계획의 중요성: 디지털 자산 관리와 법적 대비
사망 후 가족이 열람할 수 없는 자료를 두고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 계획이 핵심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자산 계획(Digital Estate Planning)’이 하나의 법률 서비스 분야로 자리잡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법무법인이나 디지털 유언 서비스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디지털 유언장은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온라인 자산과 개인정보, 파일, 계정 등에 대해
① 누구에게,
② 어떤 범위까지,
③ 어떤 방식으로 넘길지를 명시하는 문서입니다.
공증을 거치거나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등록하는 경우, 사후에 법적 효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유족과의 마찰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생전에 플랫폼별 사후 설정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유효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의 ‘사후 계정 관리자’, 애플의 ‘디지털 유산 접속자’, 네이버와 카카오의 ‘사망자 계정 삭제 신청 시스템’은 고인의 의사에 따라 정보를 보존하거나 삭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생전부터 디지털 자산을 ‘남길 것’과 ‘지울 것’을 구분하고, 그에 대한 접근 권한을 지정해두는 일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사후 디지털 상속 분쟁을 줄이는 현명한 방식입니다.